벚꽃 흘려보내기 - 2018/11


  그간의 열기를 지워내며 가을이 다가왔다. 방파제를 딛고 바라본 시야에 지평선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물결이 맞닿아 바스러지고 다시 나타나길 반복했다. 저녁 무렵의 해는 흐린 하늘에 오간 데 없었다. 짧은 잔물결들이 비추는 회색 일렁임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머리가 멍해졌다. 방파제가 좁은 길을 감싸며 한참 이어지고 먼 곳에 조그맣게 붉은 등대가 보였다. 지금 뛰어들면 저곳까지 가 닿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호흡법도 물장구치는 법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준우 씨는 나무보다 숲을 볼 줄 알아야 해요, 지긋지긋한 기분으로 담배를 피우며 오늘 들은 말을 읊조렸다. 두 시간의 상담이 내게 남긴 말이었다. 서울대의 박사 학위까지 얻고 전문의가 된 선생님은 결국 내 시야의 문제라 말하며 예정된 진료를 끝 맞추었다. 다음 시간까지 다시 내 결핍을 나타낼 기억을 찾아야 했다.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부터 한 달 동안 이런 과정이 거듭 되풀이되었다. 상담실의 한편을 차지한 책장에는 “우울한 거지 불행한 게 아니에요”, “우울증: 슬픔과 함께 온 하나님의 선물”, “5분으로 끝내는 불안 퇴치” 같은,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 제목의 책으로 가득했다. 사방에서 내가 정상인이 되길 바랐다. 그 방에서 나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새벽에 눈을 뜬 내가 아빠한테 아끼던 플라스틱 도깨비방망이를 쥐여 주었고, 다시 자고 일어나보니 엄마의 얼굴에 보라색 멍이 가득했다는 이야기도, 그렇게 피자가 좋으면 피자집에 팔아버리겠단 말에 울면서 엄마한테서 도망쳐 동네 쓰레기장에 꼬박 한나절 동안 쭈그리고 앉아있었다는 이야기도, 열한 살, 강남 아이들에게 분 영어 조기 교육 유행에 맞추어 가족을 떠나 억지로 가게 된 미국에서 일 년 동안 외삼촌에게 일주일에 다섯 번씩 얻어맞았다는 이야기도, 대학에 다니는 동안 친한 친구 중 세 명이나 이런저런 병에 걸려 죽었다는 이야기도, 여러 명이 함께 혼수상태에 빠진 친구의 병문안을 하러 갔을 땐, 친구의 아버님이 눈물을 참는 것이 뻔히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주신 돈으로 다 같이 피시방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도 모두 선생님께 전해주었다.

  예상과 다른 상담 방식이었다. 온갖 삐뚤어진 사람들을 치료하는 유능한 정신과 의사라면 가족용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수염 덥수룩한 노인처럼 나에게 모닥불을 쬐어주고 인생사는 법을 가르쳐 줄 줄 알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게 지나간 기억 중 어두운 것을 골라 말해 주길 원했다. 왠지 시험받는 기분이 들어 눈에 불을 켜고 평범한 이십 대 중반의 내 인생에서 비극을 찾아내야만 했다. 몇 가지는 머릿속 구석에 쭉 남아 있던 것인지, 아니면 어느새 잊혔지만 다른 누군가 말해주어서 알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병원에 다니기 전까지 불우한 과거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은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이러다 보니, 서울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어렵사리 제주도로 도망 온 것이 내가 애초부터 틀려먹은 놈이었기 때문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을 기점으로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인간이 되었다. 그날 전까지는 아무 문제도 느끼지 못했는데도, 순식간에 누군가 내 육체의 정신을 바꿔치기한 듯했다. 눈앞이 새하얘졌고 무엇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즐거움이 없었단 걸 그때야 실감한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는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정말이지 욕된 생활을 했다. 내가 죽거나, 주변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가보지 못한 곳으로 도망가야 했다. 나는 마지막 방법을 택했고 그때까지의 짧은 직장 생활을 통해 모인 돈을 들고 제주도로 왔다.

  평생 만들어 온 모든 계획이 없어진 나는 언제까지 이곳에서 지내야 할지 확신이 없었기에 임시방편이 될 돈벌이를 구해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 좋게 집에서 가까운 카페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었다. 카페의 이름은 ‘니체’였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가 가까웠고, 최대한 나무처럼 보이는 황갈색 실내장식이 구석구석 배치된 곳이었다. 원목을 흉내 낸 플라스틱 몸통을 가진 저가형 스피커에서는 항상 ‘스타벅스 매장 음악 재즈 모음’이 울려 퍼졌다. 니체의 벽에는 존 콜트레인과 쳇 베이커의 큼지막한 레코드판이 걸려 있었지만 정작 턴테이블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서 항상 윤서라는, 나보다 약간 어려 보이는 여자와 함께 일했다. 윤서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금·토·일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네 번, 다섯 시간씩이나 계산대 뒤 좁은 공간에서 함께 무료함을 달래야 했다. 어째서인지 우리는 첫 만남부터 나이도 묻지 않고 말을 놓은 채였다.



  “그거 나태야!”

  “낙태?”

  “아니, 나태라고, 우울증이 아니고 나태한 거야 너.”

  전날 선생님의 진단 얘기를 하자 윤서가 장난스럽게 쿡쿡 웃으며 말했다. 윤서는 언제나 나의 병원 이야기를 즐겁게 들어주었다.

  “아니야, 나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어. 너는 번지르르하게 우유 거품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

  내가 변명했다. 확실히 음료 제조를 맡은 나보다 계산대의 윤서가 한참은 편해 보였다. 그리고 스팀 기계로 우유 거품을 만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이 격차는 무인주문기계가 생기면서 더욱 심해진 참이었다. 게다가 저 기계로 인해 조만간 잘리게 되는 사람도 나일 것 같았다. 손님들에게 윤서가 나보다 더 친절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윤서는 날씬하고 자그마한 몸집에, 흔히 보기 힘든 외꺼풀의 큰 눈, 톤이 높아져도 하늘하늘 흔들리지 않는 또렷한 목소리를 지녔다. 사극에서 큰일을 해내는 여성 배역을 맡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여기 봐, 병든 자처럼 길에서 몰래 달아나지 마라.”

  윤서가 나한테 펼친 책을 건네주며 말했다. 윤서는 예인(藝人)은 정신적인 경험이 필요하다며, 나 같은 인간과는 달라야 한다며, 근무 중에도 잠깐씩 한가할 때면 항상 책을 읽었다. 꽤 두꺼운 책이었다. ······병든 자처럼 그 길에서 벗어나 몰래 달아나지 말라. ······대지는 쓸데없는 자들로 가득하다. 펼쳐진 페이지는 눈이 멈추는 곳마다 무시무시한 문장이었다. 요즘엔 똑똑한 사람들이 철학과보다 의대를 좋아하니 다행이라고 느꼈다.

  “이게 누군데?”

  “니체. 우울은 욕망의 타락이래, 진짜 상실하기 이전에 상실했다고 취급하고 ‘뭔가 저항적인 행위’를 했다는 만족감에 취한다고.”

  윤서가 손님 몰래 쿠키를 입에 털어 넣고 오물거리며 말했다. 나는 게을러서 바보가 된 것인가. 할 말을 잃은 나는 입을 다물고 방금 만든 바닐라라테를 건넸다. 윤서는 그것을 받아들고 상냥한 말투와 함께 손님에게 건넸다.

  “있지. 나는 몇 번 봤어, 죽고 싶다고, 살기 힘들다고 말하고, 동조를 받으면 늙은 염소가 웃는 것처럼 이상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

  윤서가 매장용 앞치마에 손을 문지르며 말했다. 일거리가 뜸해진 윤서는 계산대를 등지고 나와 마주보기 시작했다.

  “난 그런 사람들과 같은 걸까?”

  내가 물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나도 드물지 않게 보았다. 대학 신입생이었을 시절, 나는 인맥을 만들고자 별 고민 없이 학생회에 말단 회원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신입 환영회를 가졌을 때 선배들은 하나같이 사회는 답이 없다, 너무 힘들다,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있었다. 시험 기간에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면서 조그마한 초콜릿을 이백 개째 포장지로 싸던 나는 결국 화장실에 가는 척 도망가서 다신 학생회실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해 어느 날 새벽, 만취한 학생회장은 학생 삼천 명이 구독하는 SNS 총학생회 공식 계정으로 손에 수면제를 한 움큼 올려놓은 사진과 함께 “BYE”라는 글을 게시하고 기숙사에서 자살 시도를 했다. 아침까지 SNS에서 난리가 일고 119 구조대에 의해 학생회장은 병원으로 옮겨졌고 별 탈 없이 깨어났다. 소문에 따르면 수면제의 양이 치사량에 한참 모자랐고 그마저도 글을 올리고 전부 토해낸 뒤 코를 골며 잠들었다고 한다. 이후 선배는 항우울제 중독의 영향으로 항상 턱이 빠진 사람처럼 실실 웃으며 학교에 다니다 졸업한 뒤 공무원이 되었다. 현대의 니체는 SNS에 “철학왕 김철학”이라는 인기 계정을 운영했을지도······, 무심하게 지나친 니체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다음 생에는 노예를 거느린 로마인으로 태어나기를 바랐다.

  “잘은 모르겠어. 아직 얼마 보지 않았으니까. 넌 걔들보다 낡은 느낌이야, 골동품이 되어버린 골동품 가게 아저씨 같아.”

  윤서는 내 눈을 말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윤서는 대화할 때 눈을 마주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상대방과 자신의 차이를 마주하면 배우로서 자신의 한계를 보는 기분이 드는데, 상대방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을 보면, 자신의 눈동자의 비칠 상대방의 모습이 상상되어 커다란 거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윤서의 동공은 부자연스러우리만큼 크기가 커 조금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윤서는 내 모습을 또렷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에 병원에 갈 땐 나랑 같이 가, 금요일 오후라고 했지?”

  문에 달린 종이 약하게 울리고 손님이 들어서자 윤서가 잽싸게 몸을 돌리고는 말했다.

  “같이 가다니 무슨 말이야.”

  나는 깜짝 놀랐다.

  “나도 상담받아보고 싶어졌어. 병이 있는 척 의사 앞에서 연기하겠어. 언젠가 악역도 맡아야 하잖아. 아주 지독한 성격장애를 앓는 살인자가 되는 거야, 그리고는 유명 배우를 공포에 떨며 도망치게 만들어야지.”

  윤서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한없이 상냥한 말투로 손님에게 메뉴를 물어보았다. 윤서의 세계에 들어선 니체가 양반다리를 틀고 눌러앉아 붉으락푸르락 얼굴을 구기곤 주변을 가득 메운 다른 이들을 윽박지르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나는 억, 하고 순간 숨이 막히는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창과 부딪히는 거센 빗소리가 들렸다. 꿈을 꾸는 동안 흘렸을 식은땀으로 인해 오한이 느껴졌다.

  나는 발가벗은 채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의 해가 진 것처럼 안개는 조금도 끼어있지 않았다. 한없이 멀리, 눈이 가닿는 곳까지 새까만 땅과 짙은 자색 하늘이 또렷이 보였다. 어느새 땅의 끝에서 커다란 검은 새의 머리가 고개를 뒤로 돌려, 번쩍이는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죽어라 뛰어보아도, 방향을 아무리 바꾸어보아도 검은 새의 등을 벗어날 수 없었다. 섬뜩한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려도 검은 새의 눈은 시야의 끝에서 움직이지 않고 존재했다.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디디면 다시 그곳으로 떨어질 듯한 기분이 들어 발끝의 저림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나는 한참을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다가, 일어나 샤워를 하며 온몸의 끈끈한 땀을 씻어냈다. 아침은 토스트와 오렌지 주스로 때웠다.

  싼값에 살게 된 집은 장식을 썩 즐기지 않는 나에게 넓지도 좁지도 않았다. 생활하는 방 한 칸과 화장실, 그리고 자그마한 부엌이 있었다. 가구는 극단적이리만치 간결한 것들이었다. 책상과 의자, 사물함, 옷장, 침대가 모두 방의 각 모서리를 차지하고 한 개씩, 석회 칠을 한 벽에는 커다란 알루미늄 틀의 창이 있다. 평소에 책을 읽지 않기에 책장은 필요 없었지만, 회사에 다닐 때 뒤적이던 기술서적 몇 권이 신발과 함께 현관 안쪽에 놓여 있었다. 서울에서 짐을 챙길 때 그 책들을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고민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 때문에 그 책들은 이곳까지 가져와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채 구석에 내버려 두었다.

  윤서와 함께 병원에 가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윤서는 나와 같은 시각, 다른 의사에게 진료 예약을 했다. 아직 약속 시각인 두 시까지 여유가 있었다. 개어두었던 검정 스웨터와 트렌치코트를 두둑하게 걸쳐 입고, 감색의 긴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가을을 짙게 했다. 큰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니체’가 보였다. 유리문 안으로는, 이따금 손님으로 들리면 보게 되는 아르바이트생 둘이 있었다. 그 애들도 나와 윤서가 그랬던 것과 같은 자세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찰랑찰랑. 문을 열자 일 초 남짓 종소리가 울렸다. 계산대를 맡은 여자가 놀란 듯 어깨가 약간 들썩이고는 내게 몸을 돌렸다. 나는 아메리카노 한 잔과 자리를 차지했다. 눈을 감고, 윤서가 오늘 하게 될 상담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그려보았다. 서서히 비가 그쳤고 조금 후에 윤서가 두툼한 야구점퍼를 걸치고 나타났다.



  “이상해. 어떻게 하면 의사를 속일 수 있을지 고민하다 잠들었는데 불현듯 감기에 걸렸어, 최근 몇 년간 이런 적이 없는데.”

  윤서가 팔짱을 끼고 으스스 몸을 떨곤 말했다. 우리는 곧바로 카페를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은 커다란 벚나무를 지나 단 십 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그 벚나무는 신기하게도 가을에 꽃이 핀다고 했다. 비에 젖은 분홍빛 꽃잎이 흔들리며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꾀병을 부리면 진짜 병에 걸리는 법이래.”

  “그렇다면 감기보단 분노조절장애가 왔으면 좋겠어. 가끔 카페에 와서 예술이랑 정치가 어떻고, 사회가 어떻고 하면서 싸우는 아저씨들 알지?”

  “응, 시끄러운 아저씨 둘.”

  “그 아저씨들 콧구멍에 원두를 부어버릴 거야.”

  윤서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그 아저씨들을 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나곤 했다. 그들은 가까운 어느 대학의 교수로 보였다. 인식, 체제, 투쟁 같은 단어를 자주 쓰곤 했다. 그 권위적이고 떠들썩한 대화를 보고 있자면 어릴 적 티브이로 본 만화영화의 두 거인이 세상에서 밀려나 외딴 섬에 갇혀 백 년간 매일매일 치고받고 싸우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위세 좋게 지어진 새하얀 국립병원은 바닷가와 맞닿아 있었다. 입구가 가까워질 때 즈음 병원을 바라보면 배경을 덮은 하늘과 바다, 약간 오른편에는 저 너머로 조그맣게 하얀 등대 하나, 붉은 등대 하나가 보였다. 직전까지 보이던 먼지 낀 도시의 풍경이 사라진 상태였다. 우린 로비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간호사에게 이끌려 서로 다른 상담실을 향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었을까?”

  윤서가 멍하니 붉은 등대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말?”

  내가 하얀 등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상담을 끝내고 우리는 병원 뒤편으로 나와서 오 분 거리, 바다가 부딪치는 방파제 더미 위에 앉아있었다. 평소 병원에 올 때마다 상담이 끝나고 항상 들리는 곳이었다.

  “어젯밤에 ‘시계태엽 오렌지’를 열심히 봤거든. 자기 모습을 그려보라길래 ‘Singing in the Rain’을 흥얼거리면서 눈이 세 개 달린 새까만 까마귀를 그렸지.”

  윤서가 애매한 허공에 팔을 뻗고 손끝에 힘을 주며 말했다. 첫 상담 당시 무엇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으로 허공에 떠 있는 단층형 집을 그린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나를 설명해야 했어. 근데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더라고, 생각해놓은 말이 많았던 것 같았는데, 한 세 마디 하니까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나는 마약쟁이 살인마에서 ‘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

  윤서가 손을 움켜쥐고 잠깐 말을 멈추었다. 나는 카페의 급진 사상가 아저씨들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나, 조금 고민되었다.

  “아까 ‘어떤 말’이라니, 무슨 말이야?”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아무 말도 못 했어.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속에 있을 말에 손을 뻗으면 뻗을수록 더 깊게 가라앉아버려.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다‘라던데 늙은 독일인들은 순 엉터리야.”

  윤서는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다. 나는 몸에 힘을 풀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윤서가 자기도 달라고 하여 한 대를 더 꺼내 건네주었다. 윤서는 내 말대로 꾀병에 대한 벌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다음엔 괜찮겠지, 라며 앞으로도 병원에 다녀볼 생각이라고 했다. 우리는 멍하니 각자의 등대를 바라보다가 시내에서 저녁으로 우동을 먹고 헤어졌다.



  그 뒤로 한동안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시끄러운 아저씨들을 보며 속닥거리고, 함께 병원에 가고, 밥을 먹길 반복했다. 다시 상담을 받으러 간 윤서는 예상대로 금방 말문이 트였고, 내가 경험했던 것과 비슷하게 숙련된 의사에게 이끌려, 어렸을 적 건반 뚜껑을 세게 닫아 피아노 선생님의 열 손가락을 전부 부러뜨린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인생사를 전부 털어놓는 중이라고 했다. 반면 나에게서는 더 이상의 소재가 나오지 않았다. 상담실에는 축 처진 정적이 점점 늘어났다. 역시 난 어떠한 병의 진단도 받지 못했고, 선생님은 말을 잃은 나에게 도리어 많이 나아진 것 같다며 압박을 가했다. 병원에 다니는 것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을이 저물고 커다란 벚나무의 분홍색 꽃잎은 모두 땅에 떨어져 흙빛이 되었다.



  곧 있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지막 날, 윤서는 동공이 큰 눈을 크게 뜨고 안타까워하며 이유를 거듭 물었지만 나는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서울로 돌아간다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윤서가 어린아이처럼 슬퍼하며 배웅을 나오겠다고 했다. 그것 또한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한 나는 수긍해버렸다. 윤서의 동공에 비친 자신이 보이면 정말이지 거짓말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꼼짝없이 서울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제주도로 올 때의 마음을 생각하면 분명 이때쯤 돌아가야 했을 터였다. 하지만 난 너무나 깔끔하게 서울 생활을 정리해버렸다. 당장 들어갈 집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돌아갈 곳이 있었다 한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왕복 여행을 하면 양쪽이 전부 사라진다, 이상한 말을 읊조렸다. 골동품상을 열어볼까, 니체든 비트겐슈타인이든 뭐든 다 팔 수 있을까, 괜히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고민하다 침대에 대자로 뻗어 잠들었다.



  떠나기 전날 밤, 한 번 더 병원 너머의 바닷가로 나왔다. 이곳에서 하던 일을 전부 그만둔 나는 비행기 표를 예매한 날부터 하루에 한 가지씩 짐을 쌌다. 이번에도 이전에 버리지 못한 책들을 챙겨 두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윤서의 배웅을 받을 테고, 얄밉게도 너무나 짧은 비행을 거쳐 서울로 돌아갈 것이다. 그다음의 생활에 관해선 ‘어떻게든 지탱되겠지’라는 생각을 굳히기로 했다.

  밤이 깊어가자 주변에는 고요가 감돌았다. 나는 방파제를 딛고 서 있었다. 묘하게도 밤하늘이 높고 선명하게 보였다. 차분하게 흔들리는 수면은 검은색 광택을 보였다. 멀리 보이는 붉은 등대와 흰 등대는 나란히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모든 것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가까이 있던 더 커다란 방파제에 기어올랐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의 발을 딛고 위태롭게 중심을 잡았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자 커다란 새처럼 두 팔을 넓게 벌렸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센 비가 내려 나와 주변의 더러운 것을 모두 씻어내길 바랐다. 그러나 피부로는 바람 한 점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 뭐해,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방파제에서 기어 내려왔다. 나를 부른 사람은 어딘가의 경비 아저씨로 보였다. 죄송합니다, 하하, 내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