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1 - 2018/09


  “여봐, 그 돌 일루 좀 줘 봐.”

  무겁게 내려앉은 새벽안개에 그림자를 비추며 엇비스듬히 갈라진 목소리가 고요를 깨며 나타나 말했다. 자욱한 물안개가 목소리에 음습함을 불어 넣을 만도 했다. 그랬다면 반달 모양의 돌을 쥐었던 손에 더욱 힘을 주었겠지만 그 바람 빠지는 목소리에서는 아무 위협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만 슬쩍 돌려 보았을 때, 그는 마른 몸과 광대뼈가 드러난 누리끼리하고 푹 패인 뺨에 찢어진 눈을 가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병약한 느낌을 주고 있었지만 예상외로 계곡의 돌을 장난감 뒤지듯 휙휙 들었다 놨다하는 힘찬 몸짓은 그를 노인이 아닌 사오십 대쯤으로 보이게 하였다. 아니, 아마도 정말 그 정도의 아저씨였다.

  “죄송합니다.”

  딱히 뭘 잘못한 일도 아니었고 조금이라도 선심 쓴 건 내가 아닌가 싶었지만 이 계곡이 본인 창고라도 되는 것 마냥 헤집고 다니는 아저씨를 보니 좀도둑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이 부근에는 분명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인적은 물론 그 흔한 평상 하나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곡의 상류를 향해 걸어왔다. 불과 두어 시간 전까지의 광란은 들이킨 술과 함께 위장에 남아 있는 듯하여 새벽 계곡의 불투명한 한기를 들이키며 말끔히 씻어내려 했다. 그렇게 홀로 깨어나 펜션을 나와 걸으며 다시 내 친구 사이에서 가장 결백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그제야 말없이 걸을 수 있었고, 나를 둘러싼 안개는 나의 심경에 공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시간을 깨며 저 아저씨가 나타나 계곡의 돌을 뒤지고 있었다. 돌 그 자체를 유심히 살피는 것으로 보아 계곡의 바닥에서 찾는 것은 다른 물건이 아닌 듯 했다. 수석(壽石) 수집가에 대해서는 이전의 신문을 보아 알고 있었다. 그쪽에서 용건이 있었다지만 먼저 말을 걸었음에도 다시 조용히 사색에 빠지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 외톨이처럼 느껴지거나, 혹은 이미 그런 것임을 실감하는 기분이 꺼림칙하여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저, 아저씨, 지금은 안개 때문에 돌을 찾긴 힘들지 않으세요?”

  “이럴 때봐야 기운이 느껴지는 법이야.”

  “아······ 그럼 수고하세요!”

  썩 귀찮게 여기시는 것 같아 펜션으로 돌아가 제쳐 둔 잠을 청하기로 했다.



  펜션 창가에서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감은 눈이 부시게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얼굴이 부석부석해진 친구들은 저마다 수저 하나씩 들고 해장을 하고 있었다. 맛없이 짜기만한 찌개 국물을 마시며 우리는 간밤의 언행을 되새김질하고 비웃었다.

  물놀이나 하러 계곡으로 다시 나왔을 땐, 어제의 아지트는 어떤 대가족이 먼저 차지했기에 우리는 계곡의 하류로 몇 분 더 걸어야 했다. 그곳에는 허름한 슈퍼가 하나 있었다. 살면서 그렇게 낡은 슈퍼는 본 적이 없었다. 어느 휴머니즘 영화에서라도 본 적이 있었을까 고민해 보았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석판 지붕 대신 기와를 얹었고 봉평슈퍼라 쓰여 있는 간판은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다. 담배라고 써진 스티커가 대여섯 개는 붙은 미닫이문은 약간 뒤틀려 있는 것이 힘을 주면 무너져 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문 오른편 천막 아래의 황갈색 평상 위에는 사람 머리 크기의 돌들과 함께 분명 내가 새벽에 들여다보았던 반달 모양의 돌이 놓여 있었다. 문창으로 보이는 슈퍼 안에선 뽀글뽀글 짧은 파마를 하고 거북목을 가진 아줌마가 아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새벽의 아저씨가 노인의 모습으로 평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내 친구들은 물놀이에 흥미가 떨어졌다는 나를 두고 물가에서 왁자지껄 물장구를 쳤다. 아저씨는 계곡 상류에서와는 달리 내 물음에 곧잘 대답해주었고 선뜻 먼저 나서서 수석(壽石)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아저씨는 이 년 전, 삼겹살을 똑 닮은 문양석을 주운 농부가 수석 경매를 통해 오천만 원을 벌었다는 뉴스를 보고 어렵게 수석입문(壽石敎室)이라는 책을 구해 읽고 매일 아침 계곡 상류를 뒤져 돌을 모았다고 했다. 수석 수집을 시작하면서 슈퍼 일은 아내에게 맡기고 아저씨는 모아 둔 돌을 이곳에서 판다고 했다. 원주로 가면 수석 경매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그곳까지 짐을 옮기는 수고와 참가비가 부담되어 아직 가보진 않았다고 했다. 얼굴이 상기된 채로 떠벌리던 아저씨는 순간 말문이 턱 막히신 듯했다. 아저씨는 등 뒤에 놓여 있던 책을 부랴부랴 내게 건네주었다. 겹겹이 묶인 종이는 누렇게 바래져 있었다. 나는 좀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수석은 수 세기 전, 중국의 명사가 자신의 분재정원(盆栽庭園)에 오묘한 돌을 더하면서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첫 번째 사진은 수려한 자연의 축소판이라는 산(山)형, 길게 솟은 두 회색빛 봉우리 사이의 박힌 석영은 폭포를 연상시켰다. 그 외에 표면에 꽃나무를 닮은 무늬가 선명한 문양석, 강렬한 붉은색을 띈 동그란 색채석, 그리고 딱히 무엇을 닮았다 할 순 없지만 구석구석 위태롭되 박력 있게 각을 세운 검은색 추상석(抽象石)의 사진이 있었다. 수석이 인간이 예술을 위해 만든 도구가 아닌 자연이 몇 억년에 걸쳐 삼라만상을 담아낸 진정한 예술이라고 했다.

  그에 비해 평상 위에 정성스레 진열된 아저씨의 컬렉션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역시 휘말리지 말았어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 뒷산에 널브러져 있던 그것이었다. 대체로 둥글둥글한 것이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계곡의 돌과 똑같아 보였다.

  “아저씨, 얘는 그럼 얼마예요?”

  나는 불과 한나절 전 내가 발견한 반달 모양의 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 역시 비슷한 돌을 찾아오라면 금방 계곡으로 내려가서 가져올 수 있었다.

  “오만 원.”

  “?”

  어이가 없었다. 이런 밑천 없는 장사는 본 적이 없었다.

  “이거 팔린 적 있어요?”

  돌팔이 아저씨는 말이 없었다. 아니, 조금 전부터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괜한 말을 덧붙였다.

  “예······ 수고하세요 아저씨.”

  슬쩍 인사를 건네고 친구들에게 가기로 했다. 슈퍼 안의 아주머니를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다시 밤을 새워 술을 부었다. 모두 가시 박힌 상념을 뱉어 냈다. 누가 괘씸한 년이라니, 그건 니가 잘못한 일이라니까. 아니, 나는 그냥 불쌍해서 그래. 정말, 얘들아······. 각자 앞다퉈 공감을 구했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아주 영영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것 같았다. 어렵게 주의를 피하여 밖으로 나왔다. 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계곡 바닥을 첨벙첨벙 밟으며 거슬러 올랐다.

  연일 음주에 어지간히 몸이 견디지 못했는지 머리가 깨질 듯이 조여 왔다. 밤새의 낮은 울음소리와 풀벌레의 날개소리는 생각을 흩뜨려 놓았다. 수면이 달빛으로 물들었다. 금세 시야에 낮의 슈퍼가 보였다. 평상의 돌도 그대로, 누가 훔쳐 가면 어떡하지. 연신 헛웃음이 나왔다. 저건 돌팔이 아저씨의 가난한 묶음이다. 내 주변에도 돌덩이가 거지처럼 여기저기 엎드려 있었다. 이곳은 늪이구나. 눈앞의 크고 넓적한 바위를 좌대 삼아 적당한 크기의 나를 모았다. 둥글고 표면이 꺼슬꺼슬한 것은 바람, 구멍이 송송 뚫린 것은 내 넋, 짙은 얼룩과 각이 진 것은 회한이다. 메스꺼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간 먹은 것을 전부 게워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