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팡파를로 충격의 오프닝

 

  낭만주의 전성기에 마뉴엘라 드 몬테베르드라는 필명으로 엉터리 단편을 몇 편 쓴 적이 있는 사무엘 크라메는 창백한 안색의 독일인 아버지와 갈색 피부의 칠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모순 투성이의 존재다.   이중 혈통에다가 프랑스적인 교육, 여기에 문학적 소양을 감안하고 보면 이상하리만치 복잡한 그의 성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사무엘의 반듯한 이마는 고상해 보였고, 두 눈은 커피 방울처럼 까맣게 빛났으며, 남을 빈정거리는 듯한 오만한 코와 관능적이다 못해 도발적인 입매, 각이 져 강인해 보이는 턱 그리고 라파엘풍의 웨이브 진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야망은 있지만 무척 게을렀으며, 우울한 성격과 어울리지 않게 외모가 몹시 화려했다. 현실 생활에서 그는 단지 몽상만을 할 뿐이었는데, 그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빛을 발하는 나태의 태양이 하늘이 그에게 부여한 천재성을 모조리 증발시켜버린 탓이었다. 파리 사교계에서 내가 알고 지내는 이런 부류의 반쪽짜리 위인들 가운데 사무엘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지만 실패한 작품과 같은 인물이었다. 즉 병적인 동시에 열정적인 성격의 이런 인물이 갖고 있는 문학성은, 작품 속에서보다는 차라리 작가로서의 실재 삶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새벽 한 시경, 벽난로 속 석탄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벽시계가 똑딱거릴 때면 그는 성불구의 상징 그 자체로 보이곤 했다. 현대적이고 양성적이기에 그토록 완벽한 불능 상태를 그가 대표한다고나 할까!

  침울하다가도 한순간 불꽃같이 폭발하는 그의 성격과 게으른가 하면 추진력이 있으며 이것저것 기발한 계획을 품고 있다가도 한순간 포기해버리는 종잡을 수 없는 변덕스러움을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이들에게는 종종 성격적 모순이 순진성과 정비례하기도 하며, 또 고독과 나태 속에서 상상력도 더욱 커가는 법이다. 사무엘의 기벽 중 가장 특이한 점은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버리는 경향이다. 멋진 책을 탐독한 뒤에 그는 무의식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내 것으로 하기에 딱 안성맞춤이군! 그러니까 이건 내가 쓴 거야, 거의 내가 쓴 거나 마찬가지라고.’

  요즘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거리에서나 산책로, 음식점, 유원지 등에는 이런 부류의 사람이 득실거린다. 그들은 새로운 경향에 너무나 잘 편승하기에, 자기들 스스로가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믿을 정도다. 오늘은 플로텡 또는 포르피르 같은 작가의 신비스럽고 난해한 책을 힘들여 읽는가 하면, 내일이면 자신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불란서풍의 경박한 구석을 작가 크레비용이 얼마나 꼭 집어 표현해냈는지 감탄해 마지않곤 한다. 어제는 카르당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오늘은 스턴과 어울리거나, 또는 라블레식의 지나친 과장법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띄곤 한다. 이러한 변신에 언제나 흡족해 하기에 문학적 평가에 있어 자신들을 훨씬 앞서는 천재 작가들을 결코 부러워하지 않는다. 순진하면서도 경탄할 만한 뻔뻔함, 이것이 바로 주인공 사무엘의 성격이다.

  태생으로 보자면 완벽한 신사이며, 여가를 보내는 모습을 보면 약간은 건달이고, 희극 배우의 기질을 가졌으나 실제 생활에 있어서는 비극을 공연하는 듯 보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희비극이라고나 할까? 즐거운 일이 있어 기분이 좋아지면 그것을 곧장 증명해야 하므로, 우리의 주인공은 애써 웃음을 터뜨리려고 노력하곤 했다. 또 옛 기억을 떠올리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려고 하면, 당장 거울 앞으로 달려가 눈물짓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해야만 했다. 만약 어떤 여인이 사납고 유치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그에게 바늘이나 주머니칼로 살짝 생채기라도 냈다면, 사무엘은 식칼로 공격을 당했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식이었다. 또한 그가 지금 이만 프랑쯤 빚을 지고 있다면 분명 과장된 넋두리를 늘어놓을 게다.

  “백만 프랑의 부채에 시달리는 이 천재의 운명은 얼마나 처량하고 안타까운가!“

  하지만 그가 진실된 감정을 모른다거나, 또는 정열을 단순히 표면적으로만 느낀다고 보아서는 결코 안 된다. 전날 우연히 알게된 사람의 빼어난 외모에 끌려 친구로 삼아버리고, 다음 날엔 그에게 자신의 옷까지 성큼 벗어 준 적도 있다. 정신과 영혼의 문제에 있어서 그는 독일 혈통에서 오는 느긋한 명상적 기질을 지녔으며, 한편 열정에 관한 문제라면 모계 쪽의 경박하고 성급한 라틴의 불꽃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허영심에서 기인하는 프랑스인 특유의 여러 가지 기벽을 갖고 있었다. 이미 이백 년 전에 고인이 된 작가나 예술가를 옹호하기 위해 사무엘은 결투도 했고, 열성 신자처럼 행동하다가도 때로는 철저하게 무신론자가 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연구한 모든 예술가의 종합이며, 동시에 자신이 읽은 모든 책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모방적 기질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으로는 너무나 독창적인 인물이었다. 부드러운가 하면 이내 사나워지고, 게으른가 하면 악착같으며, 아는 것이 많은가 하면 모르는 것도 꽤나 많고, 흐트러져 있는가 하면 단정하기도 한 사무엘 크라메. 그는 자신의 필명인 마뉴엘라 드 몬테베르드처럼 낭만적이고 여성적인 면도 갖고 있었다. 여자를 대하듯 남자 친구에게 깊이 빠져들기도 하고, 여인을 동성 친구처럼 좋아하기도 했다. 선량한 마음 씀씀이와 더불어 모든 교활한 수단도 동시에 지닌 그는 결코 어느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불가능’ 이기 때문이었다. ‘뭔가 새롭고 신기한 것은 없을까?’ 언제나 그는 이런 것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