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호 품목의 경매 - 토머스 핀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7

“나를 제발 당신의 그 복잡한 논쟁 속에 끌어들이지 말아요.” 그는 입가에 친숙한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당신이 누구든 간에 말입니다.” 그 순간, 에디파는 시체의 차가운 손가락이 피부에 닿기라도 한듯 전율을 느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환상에서 벗어나도록 당신이 날 도와주길 바랐기 때문이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 환상을 소중히 간직해요.” 힐라리어스가 격렬하게 외쳤다. “달리 당신이 가진 게 없지 않소? 환상의 작은 촉수를 꼭 움켜잡아요. 프로이트의 추종자들이 당신을 꾀어 그것을 없애 버리거나 약사들이 독약으로 그것을 제거하게 하지 말아요. 그것이 무엇이든지 소중히 간직해요. 왜냐하면 그것을 잃어버릴 때 당신은 그만큼 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기 쉬우니까 말이오. 당신은 그 순간부터 아마 존재하지 않게 될 거요.”

그녀는 그를 부축하면서 그가 DT로 고생하고 있음을 알았다. DT라는 머리글자에는 일종의 은유가, 즉 섬망증(Delirium Tremers) 또는 ‘흥분으로 떨면서 현실을 제대로 판별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라는 뜻이 숨어 있었다. 성수로 램프의 불을 밝히는 성자, 회상에 빠지기만 해도 신의 숨결을 느끼는 투시력을 지닌 사람,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유쾌한 영역이나 자신의 심장 맥박을 위협해 들어오는 영역 안에 조직되어 있다고 믿는 진짜 편집증 환자, 또는 우리를 보호해 줄 완충 역할을 하는 말 속에 이중적 의미가 들어 있는 진리의 오래된 갱도와 터널을 탐색하는 몽상가. 그렇다면 은유의 행위란 결국 우리가 어느 쪽에 있느냐에 따라 진리나 허위에 날카로운 일격을 가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위치, 즉 안쪽에 안전한 상태로 있었는지 아니면 바깥쪽에 상실된 상태로 있었는지에 달린 문제였다. 하지만 에디파는 도대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몸을 떨면서,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 판에 박은듯이 뻔하게 흘러온 세월을 가로질러 갈 양으로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살짝 미끄러지듯 다른 생각으로 옮겨 갔다. 그러면서 그녀는 대학 시절, 두 번째인가 세 번째 연인이었던 레이 글로징이 미적분을 풀다가 충치에 혀를 대며 “으!” 하고 냈던 그 진지하고 높은 톤의 목소리를 다시 떠올렸다. dt는 또한(신께서 문신 새긴 이 노인을 도와주시길.) 시간의 미분, 즉 변화를 있는 그대로 대면하야만 하는 아주 짧은 순간을 의미했다. 예컨대 더 이상 평균적인 것처럼 무해한 것으로 위장할 수 없는 어떤 짧은 순간, 또는 로켓이 날아가다가 중간에 멈춰 선다 할지라도 로켓이 간직하고 있을 가속도처럼 짧은 순간, 세포가 살아 있을지라도 그 속에 내재해 있는 죽음을 일별하는 것처럼 짧은 순간을 의미했다. 이 언어유희에 고도의 마력이 깃들어 있고, DT가 친숙한 태양 너머, 남극의 순수한 고독과 공포로 이루어진 음악으로 이루어진 dt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었기 때문에, 그 선원이 다른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그러나 그녀가 알고 있던 그 어느 것도 그것들을, 또는 그를 보호해 주진 않을 것이었다. 에디파는 늙은 선원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피어스가 죽기 전과 후 가장 어둡고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에 각각 걸려 왔던 전화 속의 두 목소리도 떠올렸다. 그 목소리들은 가능한 천만 개의 다이얼을 돌려 가며, 모욕적인 말과 더러운 욕을 내뱉고 공상과 사랑을 기도하는 일을 단조롭게 번갈아 가며 전화를 받는 사람들 중에서, 언젠가는 자신을 드러내 보일 그 불가사의한 타자를 찾아 끊임없이 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그러한 맹목적인 기도를 반복하면 언젠가는 이름 붙일 수 없는 행위나 인식, 또는 진리의 언어를 찾는 도화선이 되리라는 생각에서 끊임없이 타자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양쪽 모두로부터 배제되고 소외당한 자들의 모든 것에 대해 들었다. 그들은 더러운 놈들이고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말들을 말이다. 사실 얼마나 많은 다양한 기회들이 이 땅에서 말살되어 왔는가? 지금은 마치 거대한 디지털 컴퓨터의 매트릭스 사이를 걷고 있는 셈이 되어 버렸다. 머리 위로는 0과 1이 균형이 좌우로 잘 잡힌 모빌처럼 끝없 매달려 있을 그런 매트릭스 사이를 말이다. 상형문자와도 같은 그곳 너머에는 초월적인 의미가 숨어 있거나 아니면, 그저 이 세상이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명백한 것들 뒤에는 또 다른 형태의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지도 모른다. 에디파가 진정한 편집증의 빙글빙글 도는 희열 속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진짜 트리스테로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미국의 외형 뒤에 트리스테로가 있는지도 모르고, 사실은 그저 미국만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만일 그저 미국만이 있을 뿐이라면, 트리스테로와 관계를 유지할 유일한 방법은 소외된 사람으로서 편집증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죄인으로 짐작한 이들에게 자신들은 면죄부라도 주어진 마냥 몰상식한 폭력을 가하는 것을 신물이 나게 보고 있다. 또, 모든 집단갈등은 유사한 구조를 같기에, 이러다 보니 윤리 문제에 관할 때에는 어느 쪽을 보아도 구역질이 나고 그들의 논리는 폭력의 순환을 미화시키는 도구로 느껴지게 되었다. 공감 자체는 물론 필요한 덕목이라지만, 공감의 내용에 대해서도 물어보며 판단해야 한다. 되물어지지 않은 공감이, 이성을 배제한 감성이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은 파시즘적 권위로 향하고, 모든 절대시는 폭력을 부른다. 감성이 실은 그런 것이다. 가장 따뜻한 것처럼 인식되지만 그것만으로는 항상 뭔가를 배제하기에 스산하기 그지없다. 보편적인 정의는, 이것 외에는 무엇도 증명할 수 없지만, 누구도 억압하지 않는 특성만은 지니고, 진실로 도덕적인 사람은 도덕주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권력을 타자에 대한 지배와 관리를 통해 확인하려 드는 이들이 많은 사회가, 우리 모두와 무관하지만은 않다.